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5 땅끝 마을 Portage Pass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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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장작 태우는 내음에 잠을 깨는 새벽을 맞이하고 봇짐을 챙기는 나그네의 유랑은 다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앵커리지 북부인 디날리와 글랜 하이웨이 지역을 돌았으니 다시 앵커리지로 돌아와 재정비를 해서 남부 쪽인 Whittier와 Seward 그리고 fjord 국립공원을 돌아 행할 8자형의 여정이 이어집니다. 먼저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고 피시 마켙에도 들러 와일드 레드 살몬도 작은 놈으로 한마리 챙깁니다. 싱싱한 횟감으로 골라 오늘 저녁은 위티어라는 어촌 마을에서 피요르드 같은 해협을 바라보며 달과 함께 겸작을 하려 합니다. 날이 궂어 달도 별도 함께 하지 못한다면 푸른 달 만큼이나 환한 빙하를 벗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려합니다. 앵커리지에서 이곳 까지는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만 달리는 해안 길 Seward highway는 자꾸만 수려한 풍경을 내어 놓기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버립니다. 해협에 가득찬 안개 너머로 설산 빙산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계곡에는 계절의 색들이 깊게 드리워져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거벽 사이마다 폭포들이 쏟아지고 구름인지 빙하인지 분간키 힘든 햐얀 하천들이 산허리를 휘감으며 다가왔다 뒤로 빠지는 풍경들. 나는 승용차가 아닌 구름을 타고 날으는 신선입니다. 100년의 알래스카 철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대한 Portage 터널을 지나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재삼 인식하게 됩니다. 차와 기차가 번갈아 왕래하는 이 굴길은 무려 수 킬로나 이어지는데 제법 비싸다 여겨지는 통행료를 내어야 할 만큼 단단한 암석을 쪼개면서 개통한 하나의 대단한 걸작품입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마자 오른쪽 자갈길로 들어서면 이내 트레일 헤드가 나오는데 거저 등산로임을 알리는 입간판과 곰을 주의하라는 그림 하나 세워뒀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차 하나 세워두지 않은 주차장에서 비옷과 장비들을 챙겨입고 후드를 쓰고 단단히 졸라매고 초반 숲길을 걷는데 행여 누구라도 마주친다는 희망이 있다면 덜 위축이 될텐데 지형이나 주변 환경이 꼭 곰이 출현할 같은 곳입니다. 서로 떨어지지 말도록 당부하고 길을 오릅니다. 왕복 7km. 폴티지 고개에 올라 전후로 펼쳐지는 빙하들과 그 빙하가 녹아 이룬 옥색 호수를 감상하고 내리막 길의 그 호수까지 이르는 그리 길지 않은 그러나 경치가 너무도 미려한 길이며 마지막 눈앞에 두고 펼쳐보는 폴티지 빙하는 그 장대함이 단연 압권입니다. 길은 오를수록 점점 활엽수와 침엽수의 비율이 달라집니다. 고개를 넘을 즈음에는 급기야 낮은 침엽수만 산을 메우고 있습니다. 삼사십분 줄행랑 치듯 달려 올라가면 저 숲길을 통과하고 목초지를 걷게 되어 시야가 확보되니 곰의 출현도 미리 알 수 있으리라 별 통밥을 재봅니다. 아무튼 열심히 일행들을 채근하며 자갈길을 치고 올라갑니다. 비 안개에 가려져 희미하지만 고도를 높일수록 전면에는 산마루 뒤에 숨어 있던 Portage 빙하가 솟아오르고 뒤를 돌아보면 위티어 마을이 점점 작아지면서 건너편 산봉들 너머로 또 다른 빙하군들이 숨바꼭질 놀이하다 술래에게 들켜버린 것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은 어느새 수로가 되어 시내가 되어 흐릅니다. 한참을 오르니 오른쪽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모여들어 길을 물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혹 희망서린 기대지만 누가 뒤 따라 올라 올수도 있고 또 내가 되돌아 내려 올 길이기에 잠시 수고를 해 물길을 길옆 도랑으로 돌려놓습니다 이중으로 미니 보를 만들어 주니 어느 정도 물길이 잡히고 도랑으로 콸콸콸 빗물이 흘러들어가니 뿌듯한 마음으로 가볍게 고갯마루를 넘습니다. 길 가에는 8월 한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도 아직 녹지 않은 눈밭이 남아있어 이방의 생경함을 더해줍니다.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앞에는 폴테지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져 있고 좌로는 만년설산이 우로는 장대한 폭포가 오늘따라 유달리 길게 낙하하고 뒤를 돌아보면 소담스런 해안 마을 위티어를 감싼 빙하들과 해협이 풍경화가 되어 보입니다. 한컷 한장면을 찍다가 이제는 숫제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있는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서 한폭에 담아봅니다. 또한 내 기억과 내 가슴에도 가득 채우면서 말입니다.  비는 여전히 소리 없이 뿌리지만 나만의 정점 도달 후 치루는 의식같은 세레모니를 오늘도 변합없이 거행합니다. 정상주 한잔 쭈욱 들이키고 한없이 넓어진 폐부로 한 개피의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것. 속세에서의 맛보다 비교할 수 없도록 더욱 감미롭습니다. 더욱 가벼워진 발길. 바람과 함께 이 낯선 자연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호수에 다다랐습니다. 뿌연 비안개로 가려졌던 거대 빙하가 거짓말처럼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빙하 전체를 감상케 해주는 은총의 순간. 열심히 기념 사진을 만들어냅니다. 빙하 끝자락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들이 이리저리 호수를 배회하는데 그 사이로 유람선이 평화스럽게 항해합니다. 참 완벽한 장인의 풍경화라 여겨지며 그 그림속에 우리가 함께 있었음이 무한한 기쁨으로 가슴 뿌듯해 집니다. 인고의 시간을 버티며 피워낸 호변의 야생화들. 그 완벽한 풍경화의 한 개체입니다.   빙하 보트 크루즈에 승선했습니다. 해협을 따라 운항하면서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와 새들의 은거지를 방문하고 사나브로 무너지는 빙하의 장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는 크루즈 여행입니다.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출항 시간이 되니 끝없는 대열이 만들어지고 배는 한좌석도 남김없이 만선입니다. 긴 뱃고동소리를 남기고 부두를 떠난 배는 미끄러지듯 해협을 빠져나가며 미리 주문한 간단 식사가 배달됩니다. 단 두가지 중에서 택하는 메뉴중에 랍스터 수프를 주문했고 그래도 바다의 향미를 맛볼수 있어 그랬는데 크림 챠우더식으로 끓인 것으로 시장한 탓도 있었지만 셰프의 손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출중한 맛입니다. 추가로 준비해간 크로아상 빵과 간식을 보태니 훌륭한 한끼의 식사가 되는데 넓은 창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산과 빙하 그리고 알라스카 통토의 식생들이 함께 하니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선실의 따뜻한 온기와 식후의 나른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만 달콤한 졸음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다 군상들의 탄성과 외침에 깨어서 밖을 나가보니 빙하 풍경들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인간 세상과 동떨어진 피안의 세계. 그 자연미의 극치가 눈에 잡히는 순간입니다. 길고도 높은 절벽을 따라 그야말로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이들 붙어서 둥지를 튼 바다새들이 이방인들의 출현에 뭐라고 불만스런 듯이 시끄럽게 외칩니다. 유독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새들이 짖어대는 절규는 고막이 터질듯이 요란한데 바닷물 속으로 무너져내리는 빙하의 굉음과 함께 전쟁터와 같은 아비규환입니다. 아니 어쩌면 고요한 알라스카의 숨기고 지내온 생동하는 본모습인지도 모르지요.  켜켜이 쌓이고 쌓여진 거대 빙하들이 바닷물 까지 흘러내리고 이따금 무너지며 보여주는 그들의 장엄한 죽음. 그 소멸이 유빙으로 남아 또 다른 비경을 만들어 내고 떼 지은 바다새들과 유장한 폭포들이 여백을 채우니 완벽한 신의 작품이 됩니다. 어쩌면 비안개에 살포시 감춰진 비밀스런 풍경이 신비감 까지 더해주니 유구무언이라. 그저 입만 헤 벌리고 경탄해 할 뿐입니다. 이 수려한 풍광을 충분히 표현해 낼 어휘의 한계와 문장력을 한탄하는데 벼랑 가득 채워진 수만마리 갈매기들이 배 주변을 날아다니며 머나먼 곳에서 찾아준 이방인의 애잔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니 그 답답한 자학의 아픔을 달랠수 있습니다. 가장 극적인 거대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풍경 가까이로 최대한 접근을 하여 배를 멈춥니다. 선원하나가 긴 장대 칼쿠리를 이용하여 물위를 떠도는 푸른 유빙을 하나 건져냅니다. 제법 큰 놈을 갑판위로 올리고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마지막 멘트에는 장사속을 그대로 비춥니다. 이 유빙을 쪼개서 칵테일과 음주류에 넣어서 팔겠다고. 호기심이 동한 승객들이 앞을 다투어 음주류를 주문하는데 우리 팀들도 위스키 온 더 록 한잔씩을 마셔봅니다. 영겁의 세월동안 다져온 지구의 무게와 밀도를 서서히 녹여가며 맛보는 이벤트. 숭고한 알라스카 태고의 자연을 오늘은 미각으로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