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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시간이 깃든 빙하의 근본적 아름다움이.. 유럽과 그린란드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8세기경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한반도의 절반 정도 크기에 32만명 가량의 적은 인구가 모여 살며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며 섬나라답게 바다에 익숙한 아이슬란드의 주요산업은 수산업입니다. 어업과 수산물 가공업이 국민 소득원의 거의 7-80% 차지하고 있으며 그 나머지가 관광업의 순으로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식재료나 생활용품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살인적인 물가로 악명이 높은데 심지어 그 흔하게 잡힌다는 생선류도 타지역에 비해 더욱 비싸니 그 이유가 참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감칠맛이 일품인 빨간 연어로 아침식단을 채우고 오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하늘이 은총처럼 맑고 푸릅니다. 남부 지역 어디서나 보이는 아이슬란드의 지붕 바트나요쿨(Vatnajökull) 빙하가 오늘은 찬연한 햇살이래 장대하게 누워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는 여러 화산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북극과 가까운 지역이기에 밤하늘에서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고 또 곳곳에서 온천을 만날수 있으며 빙하 역시 이곳에서 볼수 있는 구경거리 중 하나로 우리가 겨울 시즌에 아이슬랜드를 여행하는 목적이기도 하지요. 해안선을 따라 설국 속을 달려가니 한번씩 소설이나 신화속에서 봤을 법한 몽환적인 풍경들이 이어달리며 눈앞에 펼쳐집니다. 동부 수평선을 차오르는 태양을 품고 아침이 찾아오고 간밤엔 제법 눈이 내려 뽀얗게 쌓였습니다. 차 시동을 걸어놓고 성애와 얼음이 녹기까지 숭늉차 한잔의 여유를 갖고 길위에 오릅니다. 날씨가 청명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전날 흐려서 제대로 보지못한 명소들을 급하게 한번씩 더 확인하고 회픈으로 달려갑니다. 아이슬란드는 사람이 작아지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거대한 자연이 그렇게 만들기도 하려니와 양이 사람보다 많고 자동차보다 달리는 말을 보기가 더 쉬우니 이곳에서 풍경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고 동물입니다. 천으로 방목되던 양들은 겨울나기를 위해 우리로 들었고 유독 추위에 강한 말들만이 코로 하얀 김을 뿜어내며 겨울 산하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말과 함께 곁에 서서 그들을 어루만지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두어번 바램을 토로했던 이를 위해 철조망에 가까이서 무리지은 말들이 있는 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설산들을 배경으로 하고 섰는 그들이 앵글 속에 차니 과연 또 다른 작품이 만들어지고 친근감으로 손을 내밀자 가까이 다가옵니다. 큰 눈망울엔 선한 심성이 그대로 읽힙니다. 목덜미를 토닥거려 주니 좋은지 가만히 내어주고 있습니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얼음 행성을 연상케 합니다. 유럽 최대 빙하인 바트나요쿨(Vatnajökull)은 섬의 남동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전국토의 8%를 차지하는 규모답게 어디서나 이 거대한 빙하가 보입니다. 무장을 하고 빙하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평소같으면 30분 거리인데 쌓인 눈 때문에 한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빙하 가까이에 다다랐습니다. 마치 어마어마한 크기의 쓰나미가 코앞에서 일시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고 손뼉을 짝하고 치면 와르르하고 다시 흘러내려 온 대지를 쓸어 버릴 기세입니다. 크레바스가 만들어낸 얼음의 거친 결들은 멀리서도 선명합니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걷고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 점처럼 까마득하고 아득합니다. 대자연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새삼 와닿으면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물밀듯 밀려옵니다. 쫓기듯 오늘의 마지막 여정지인 요쿨살론(Jökulsárlón)으로 달립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도착하여 황혼 빛에 비치는 유빙들의 화려함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우중충한 구름이 걷혀져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날씨는 마치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무기력하고 희뿌연 안개는 지표면까지 축 늘어졌고 빗방울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한두방울씩 떨어집니다. 우의를 입고 호수로 다가가는데 어둡기만 하던 물빛이 가까울수록 오묘한 소라 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이 얼어붙어 있는 거대한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과 바닷물이 만나 만들어낸 색이었습니다. 표면에 검게 둘린 화산재는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깊고 진했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들은 물결을 따라 쓸쓸하게 흘러가는데 영겁의 시간이 깃든 빙하의 근본적 아름다움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순간입니다. 호수를 따라 해안으로 걸어 나가니 검은 모래밭 곳곳이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합니다. 뭍에 떠내려온 작은 유빙들인데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듯한 광경으로 놀라움과 환희로 탄성을 내지르게 됩니다. 이름하여 다이아몬드 비치입니다. 작은 유빙을 들고 큰 유빙 근처에서 기념 사진도 찍고.. 이미 어두워지고 있고 비마저 시나브로 떨어지건만 아무도 개의치 않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하늘이 아닌 사람 마음에 달린 일이었으므로... 현대사의 비극을 몸으로 느낀 크로아티아 출신 청년이 친절하게 매니저로 근무하는 숙소에 들어 여장을 풀고 서둘러 저녁을 준비합니다.페밀리 포장으로 산 소고기가 남아 오늘도 스테이크에 야채 볶음으로 준비하며 그 친구에게 같이 식사 할거냐고 물어보니 반색을 하며 Why Not! 받아드립니다. 즉석 겉절이 김치를 곁들인 저녁 정찬 식탁위에는 간단없눈 대화가 이어지는데 그는 크로아티아의 자연과 트레킹에 대한 나의 경험과 소감에 한마디씩 거들다가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뜯기는 아이슬란드 생활의 곤궁함까지도 풀어 놓습니다. 어디서나 젊은이들의 힘든 삶은 힘들구나 여기면서도 자신의 미래와 포부 그리고 세분된 계획을 말할 때는 말에 힘이 넘칩니다. 9시면 폐장하는 동네 공용 오천 수영장. 관광객 유치의 일환으로 투숙객들에 무료 사용권을 주는데 이 겨울 왕국에서 견디며 살아가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대형 수영장에 취향과 수용능력에 따라 온도가 다른 두세개의 자쿠지 풀이 있는데 우리는 단연 가장 뜨거운 곳을 택해 목까지 잠근채 시원하다를 연신 내밷습니다. 뜨거울수록 시원한 민족.. 북쪽으로 더 올라온 회픈이란 동네. 더 차가워진 공기에 눈비가 섞여 내립니다. 정수리며 어깨에 내리는 눈비가 더욱 차거울수록 온천욕의 만족감은 촘촘해집니다. 야외등 불빛아래 가볍게 내리는 비눈을 바라보며 본의 아니게 감기는 눈꺼풀을 한번씩 껌벅이며 나른한 열반에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