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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향연. 고드름의 조연. 폭포 트레킹. 아이슬란드의 젖줄 1번 도로가 섬을 한바퀴 도니 반지처럼 둥글다 하여 링(Ring) 로드로 불리는데 남부를 벗어난 동북부의 회픈 지역은 여름시즌에도 그다지 붐비지 않지만 이 겨울엔 차량의 왕래가 거의없는 한적한 길입니다. 거리낌없이 길을 달리다 보면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경과 마주치게 되는데 웅장한 자연 경관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 보다가 결국은 차를 갓길에 세우게 됩니다. 쉬어가라며 풍경들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지라며 길이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숨돌릴 틈도 없이 일상을 살면서도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왜 그런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 오면 우리는 멈출 수밖에 없는데 잠시 원시 대자연의 품에서 가슴이 뻐근하도록 폐부 깊숙히 날숨과 들숨의 심호흡을 하며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며 이런 상념에 젖을 법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겨울 아이슬란드가 내게 주는 질문이며 또한 보상입니다. 북상하면서 시간이 첨밀하여 지나쳐버린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았던 스카프타펠 빙하의 지류격인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만의 발품만 팔아도 볼수 있는 살뜰한 접근성에 아이슬란드 방문 시 빼지않고 들리는 나만의 명소입니다. 화산재가 부서져 쌓인 검은 자갈길 마저도 하얀 눈으로 덮여있고 근자에 독일인 여행객 두명이 목숨을 잃은 방하위 크레바스가 그 푸르고 큰 입을 벌리고 우리를 맞이합니다. 무섭고도 잔인한 곳. 아름다운 꽃일수록 가시를 숨기고 있듯이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은 항상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 품 속에 무시무시한 죽음의 늪을 지니고 있는데 정녕 아름다움은 항상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나로 하여금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이 지구의 이방 이 거대한 빙하 앞에 서면 인간도 그저 한 알의 자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죽어지면 한줌 흙으로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뿐인 우리의 존재.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입니다. 오늘은 동남부 대표 폭포들을 방문합니다. 스코가포스(Skógafoss) 폭포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물줄기의 향연이 압권인데 폭포 뒷편에 바이킹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입니다. 폭포의 오른쪽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실시하면 2010년 유럽의 항공대란을 야기한 거대 화산 Eyjafjallajökull의 폭발의 현장을 가까이서 관측하며 즐길 수 있는데 하얀 빙하가 뒤를 받쳐주어 그 풍경에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폭포는 널리 알려진 아이슬란드 최고의 종주 트레킹인 라루가베구르 트레일의 연장인 일명 핌뵈르드할스(Fimmvörðuháls)고개를 넘는 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마니아들에게는 낯익은 길입니다. 이웃 25분 거리에 있는 또 하나의 Seljalandsfoss폭포는 스코가에 비해 여성적이라 정의할 수 있는데 동굴처럼 만들어진 폭포 뒤쪽으로 걸어가며 폭포 너머의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겨울은 얼음 왕국이 되어 절경을 이루는데 흩날린 물보라가 길을 덮고 얼어버려 우리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애석함이 남는 곳입니다. 지체하다 보니 시각이 두시를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황급히 노천온천욕 산행을 위해 헬리셰이디(Hellisheiði)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여름시즌 때는 온천과 들꽃으로 유명한 Hveragerði 인근 트레일 시작점에서 고갯마루를 넘어 Reykjadalur계곡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왕복산행입니다. 정점에 이르면 Hellisheiði산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 천상의 화원이 조성되어 자연미의 극치를이루고 계곡에는 지열로 데워진 온천물이 내를 이루어 흐르고 있습니다. 그 한자리를 맡아 동토의 땅에서 머리위 어께 위로는 하얀 눈이 내리고 오로라는 하늘 가득 춤을 추는 상상으로 노천 온천을 즐기는 명소입니다. 출발이 이미 세시에 가깝고 어두워질 귀환길의 안전을 위해 아이젠 착용과 랜턴을 소지하라 이릅니다. 대여섯의 차량이 주차되었고 서둘러 산길을 오르는데 산 곳곳에 하얀 수증기를 토해내는 간헐천이 가득하고 짙은 유황 내음이 후각을 거쳐 뇌에 전달됩니다. 길은 눈이 내리고 녹음이 반복이 되어 곳곳이 빙판입니다. 서로 마음을 의지한 채 조심스레 산길을 오르니 이미 어둠이 내리는 계곡에는 자욱한 안개 같은 수증기가 구비구비 흐르는 시내 위를 덮고 있습니다. 이미 하산들을 다 해버려 아무도 없는 우리들만의 노천 온천욕 잔치. 워낙 추워진 날씨에 온천수도 흐르며 식어버렸는지 수온이 조금 아쉬울 정도지만 이리저리 깊은 곳으로 옮기다 보면 충분히 몸이 데워지고 땀도 송글송글 맺힙니다. 준비해간 버너의 불을 지펴 뜨거운 커피 한잔씩을 마시며 주전부리로 시장기를 속이며 제법 어두워진 밤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별도 초롱하고 바람도 없으니 어디 한번 극적인 오로라의 출현을 기다려볼까요! 하늘이 일렁거리다가 연두색으로 천지를 덮어버리는 지구의 용트림. 기대됩니다. 세계 최고 온천 리조트. 불루 라군 아이슬란드 겨울 트레킹의 일정 중 마지막 날입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포도를 달리는 차안은 모두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에 매료되어 조용합니다. 슬라이드 사진처럼 지나치는 경관이 여러 빛깔로 말을 걸어오는데 미처 답도하기 전에 또 다른 경치가 재잘대듯 다가오더니 마지막에는 아련한 레이캬비크의 불빛이 지친 여행객을 위로해주며 받아줍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피오르가 설산들과 어우러진 레이캬비크는 가슴을 벅차오르게 합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는 아름답고 소박한 소도시로 각박한 경쟁에 피로한 도시살이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아담하고 한적한 이 곳에서 마음마저도 차분해지는 힐링의 기쁨을 누릴수 있습니다.아이슬란드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12만명이 모여 사는 레이캬비크는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북유럽 스타일의 독특한 상품을 파는 디자인가게, 갤러리, 호텔들이 시내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레이캬비크 도심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이 수도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 교회는 도심 어디에서든 볼 수 있습니다. 1937년 잉글랜드 건축가 구드욘 사무엘손이 디자인하고 1945년 건축이 시작돼 1986년 완성됐다고 하는데 별 웅장하지도 않은 교회 건축 하나에 저리도 오랜 시간이 걸려야하나 하는 의구심은 지울 수 없습니다. 아이슬란드 북부지역도시 아퀴레이리는 아이슬란드 제 2의 도시로 여기에도 형제교회로 불리는 교회가 포근하게 도시를 감싸는 듯 서있는데 같은이가 건축했다 합니다. 분화한 용암이 냉각되면서 생성되는 매혹적인 모양과 형태로 남아있는 주상절리에서 특히 바트나 빙하 국립공원 내 스바르티 폭포 주변의 그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슬란드 겨울 여행은 그 풍경만큼이나 쓸쓸했습니다. 사실 아이슬란드의 풍경은 지구의 태초뿐 아니라 어쩌면 최후의 모습과 닮았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그래서 인류가 멸망한 후 먼 미래 혹은 우주 먼지로 소멸할 지구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려면 아이슬란드를 가보면 된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나옵니다. 그런 까닭에 전 세계 SF영화 제작자들이 아이슬란드로 몰려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 같습니다. 겨울에는 해가 노루꼬리만큼 짧고 아침 10시쯤 시야가 밝아오고 오후 4시면 캄캄해집니다. 죽도록 심심하며 캄캄한 밤 뒤에 게으른 아침이 찾아오는 레이캬비크의 겨울 풍경은 암울합니다. 그래서 영화 ‘노아’제작자 스콧 프랭클린은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연습게임으로 창조한 땅이 아이슬란드”라고 이 검은 땅덩어리를 정의했고, 디스커버리 여행 가이드북은 아이슬란드를 가리켜 “극한 고독과 외로움의 대명사”라고 서술해놓았습니다. 자연이 연출하는 풍경이 너무 위압적이어서 인간의 능력 따위는 이곳에선 아예 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람 살기가 쉽지 않은 땅,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탐험가와 관광객에게 환영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슬란드를 다녀오면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슬란드 음악을 듣거나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또다시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꿔야 하는 마음의 병 말입니다. 일찌감치 어둠이 내리고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더해갈 때 차를 몰아 외곽으로 빠져나갑니다. 주위가 칡흑같이 어두운데 멀리 메시아의 강림처럼 빛이 내리는 곳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가 자랑하는 노천 온천 블루 라군. 세계 최대 최고의 온천 리조트입니다. 유황 온천으로 온천욕을 즐기며 시도 때도 없이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은 섭씨 100도가 넘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아들기에 사전에 하지않았다가 당일 예약하려했더니 입장 가능한 가장 이른 시간이 저녁 6시라합니다. 가격도 불쑥 올려 받고요. 그래도 이곳을 그냥 지나칠수는 없는지라 밤 온천욕을 함께 즐겨봅니다. 우유빛 짙은 물에 몸을 담그면 그 물빛에 물들어 버릴것 싶은데 밤이라 그 빛이 아쉽지만 마음만은 빠져들어 충분히 즐길수 있습니다. 짙은 유황 내음에 빠져들고 깊은 안식과 혼미할 정도로. 차분해지는 마음. 심호흡과 함께 달려온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는 상념의 시간을 향유합니다. 숨가쁘게 달려왔던 끝없는 트레킹의 유랑. 그 숱한 사람들과의 우정. 늘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던 자연의 모습. 때로는 극한 고독과 외로움의 여정. 지구를 몇바퀴 돌았던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시작될 새로운 유랑. 눈을 지긋이 감고서 또 상념의 꼬리가 물려 이어지니 지구 반대편 어느 하늘 아래서 장대한 대자연과 깊은 눈맞춤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