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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붉은 거탑. Monument Valley. 걸음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산 동무들을 보내고 소위 미 서부 10대 캐년이라 일컫는 나머지 자연의 속살을 더듬기위해 다시 여장을 꾸렸습니다. 우선 사통팔달 페이지로 달려가 말에게 물을 먹이듯 스스로에게 목을 축이고 모뉴먼트 밸리로 달려갑니다.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는 미국 유타 주의 서남부로부터 애리조나주 북부에 걸쳐 펼쳐져 있는 넓은 평원지대를 말하는데 우리는 하나의 랜드 마크로 혹은 관광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메사라고 하는 테이블형의 대지가 솟아오르고 그러한 것들이 기나긴 세월동안 침식이 한층 더 이루어져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낸 뷰트라고 하는 바위산이 산재해 있는데 이 모습이 마치 기념비(모뉴먼트)가 줄지어 있는 듯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어 지어진 이름입니다. 콜로라도 플래토우(고원)의 일부에 속하고 있는 이 지역은 수억 년 전의 지층이 융기한 후 풍화작용과 침식에 의해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 내었고 곳곳에는 깊은 계곡을 형성해내고 또는 산간 대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풍화작용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한 시절 지나면 또 다른 얼굴로 우리의 후손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빙하기를 거친 시기부터 로키 산맥에서 흘러온 강물엔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그 당시 산소의 농도가 지금보다 엄청 높았던 까닭에 철분의 산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퇴적된 모래와 흙 성분이 굳으며 다갈색의 지표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 왔습니다. 예로부터 인디언 나바호족의 거주 지역으로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구어온 강인한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나바호족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답니다만 19세기 중반부터 백인들의 나바호 캠페인이나 롱 워크라고 명명된 강제 이주와 약탈과 박해로 수많은 생명들이 스러져 간 비운이 깊게 베인 역사의 땅입니다. 그런 동정심을 일시에 털어버리게 하는 못된 행사를 저지르는 지금의 인디언들이 입구에서 입장료를 징수합니다. 미국 국립공원이나 국립 유적지 국립휴양지등 National 자가 붙은 곳이면 전국 패스 하나 사면 모두 무료입장이 가능한데 이들은 아예 창문에다 이 패스는 여기서는 유용하지 않는다며 따로 내야 한다고 안내문을 붙여두고 있습니다. 백인 침략자들이 침탈의 역사를 참회하는 뜻에서 내준 나바호 족들의 자율적 운영인데 촌놈 돈맛 보고서는 환장한다더니 가는 곳곳마다 따로 입장료를 적잖이 요구합니다. 그런 돈들 받아가지고선 먹자판에 마약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며 다 쓰고 도로도 비포장도로에 편의 시설 하나 확충 개발하지 않는 게으름에 조상이 같은 사촌 같은 이들이지만 정이 뚝 떨어집니다. 얼마나 자욱한 먼지를 먹었는지 잠시면 입안에서 모래가 자근자근 씹히는 지경입니다. 이 모뉴먼트에 들어서면 전망대 겸 방문자 센터가 있고 거기에서 출발해 비포장의 루프 형태로 한 바퀴 도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Valley Loop Drive라 명명하고 여기 저기 둘러보며 전망대에 내려 사진도 찍고 하면 최소한 2시간은 잡아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기묘한 바위산마다 이름을 지어주고 뷰포인트를 지정해 조망하게 했는데 정말이지 자연이 빚어놓은 예술 작품에 경탄이 멈추지 않습니다. 날이 궂으면 일반 차량은 다니기 힘들고 사륜 구동만 가능하다는 길도 제법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천연을 지켜온 성지입니다. 모뉴먼트 밸리에서 가장 각광받는 트레킹 코스는 거대한 바위산 옆에 각각 새끼나 엄지손가락처럼 튀어나와 자란 아니 깎인 모습의 지역 내 3개의 뷰트 중 West Mitten Butte를 조망하며 그 둘레를 휘돌아 걷으며 곁에 있는 East 뷰트도 함께 바라보는 Wild Cat 트레일입니다. 그 거대함을 우리들 눈높이에 맞춰서 바라보며 느껴보는 길인데 대략 5km미터의 길이로 가이드 없이 자율적으로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시작점은 드라이브 시작점 왼편에 있으며 또 그 왼쪽엔 캠핑장이 있어 형형색색의 텐트촌을 비집고 걸어 들어가면 됩니다. 어떻게 솟아올랐는지 깎였는지 3백 미터 이상이 솟구쳐 있는 그 거대한 붉은 기념비. 초현실적이면서 탈지구적인 풍광에 흡수되어 가만 숨죽여 걷게 됩니다. 초반의 내리막길은 붉은 사암이 풍화되어 날린 고운 모래들이 가득 깔려있어 걷기에 거추장스럽지만 들판으로 내려서면 우기에 내린 비들이 흐르며 나른 진흙들이 굳고 다져져서 발에 닿는 촉감이 아주 좋습니다. 특별한 이정표도 없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족적을 따라 걷으면 되지만 조금 혼돈스런 갈림길에는 먼저 걸었던 방문자들이 쌓아둔 돌탑이나 돌무덤을 확인하고 향방을 잡으면 됩니다. 생뚱맞게도 간혹 투박하게 만들어둔 표시판에는 이 땅에 뿌리내린 특이한 식물들 학명이 씌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허허로운 들판만이 있고 숨죽여 살아가는 키 작은 풀들과 가시나무들이 띄엄띄엄 있지만 한 때는 거목들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길가에 나둥그러져 있는 고사목이 더러 있습니다. 얼마나 혹독하게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투쟁해왔는가 하는 애처로움이 주검으로 너부러져 있습니다. 이제 좌로든 우로든 어느 길을 택해도 다시 돌아오는 말하자면 웨스트 미튼 뷰트를 돌게 되는 삼거리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태양 볕이 뜨거워 우선이라도 등에 지고 갈 양으로 오른쪽 길을 택해서 걷습니다. 각도가 달라지면서 미튼 뷰트도 다르게 표정 짓지만 멀리서 있던 모뉴먼트들이 나타나니 또 다른 감흥이 일어납니다. 또한 빛의 투사가 방향을 달리하니 같은 물체라도 변복을 거듭하니 단연코 자연이 시연하는 마술의 무대입니다. 이 모뉴먼트 밸리를 세인들에게 강한 인식을 심어준 것은 영화들입니다. 초기 서부영화의 대부분이 여기에서 찍혔고 그 이후에도 물론이지만 공상과학 영화조차도 이 다른 행성에서의 풍경 같은 모뉴먼트가 제격이라 배경으로 사용했답니다. 정통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 감독과 호흡을 맞춘 죤 웨인의 작품들. 수색자, 역마차... 당시 포드감독이 모뉴먼트 밸리를 일망할 수 있는 포인트에 영화 카메라를 설치한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이 자리를 폰 포드 포인트라 부르며 유명한 조망지가 되었습니다. 에어 울프, 백 투더 퓨쳐, 포레스트 검프, 이지 라이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전)등 세기의 명화들이 여기에서 촬영되었고 심지어는 카우보이로 분한 존 웨인이 마른 나무 가지하나 꺾어 모닥불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말로로 담배 광고조차도 “으음 맨덤” 하며 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겨내던 코털 맨 찰슨 브론슨의 화장품 광고조차도 다 여기였습니다. 그런 장면에 매혹되어 나의 흡연은 유년 시절부터 시작되었으니 지금 같으면 당연 소송감인데... 이제 해는 서산으로 달려가고 지평선에 깔리는 보랏빛 어둠은 신비로운 파노라마를 연출합니다. 불가사의한 풍광 앞에서 숨죽여 바라보는데 뷰트의 상층부는 마지막 태양빛을 받아 불기둥처럼 솟아오릅니다. 이 인디언의 성지에서 이처럼 광막한 초현실적 풍경을 접하고는 나도 모르게 그만 화들짝 놀라며 주눅이 들고 저항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눌려 손을 조아리게 되는 위엄서린 비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