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코르시카. GR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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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의 R은 랑도네(Randonnée)인 프랑스어로 제법 길게 산행을 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을 말하는데 도심을 떠난 외곽의 숲이나 공원을 몇시간 걷는 단거리 코스부터 알프스산맥을 오르내리며 걷는 장거리코스까지 다양합니다. 길을 수일 수십일을 걷는 장거리 코스(GR)와 하루 만에 마칠 수 있는 비교적 짧은 코스(PR)로 구분하는데 프랑스 GR 가운데 세계 100대 트레일에 포함된 코스는 이 코르시카 섬 을 종단하는 GR20과 더불어 몽블랑 라운드 트레일인 투르 드 몽블랑(TMB) 남부 알프스에 속한 에크랑 국립공원을 에둘러 걷는 GR54. 레만 호수에서 시작해 지중해 니스까지 알프스산맥을 오르내리는 GR5. 유럽 대륙과 이베리아 반도를 가르며 자연스럽게 스페인과 국경을 나누는 GR10 등이 있습니다. 굳이 우긴다면 대부분의 길이 스페인에 속하지만 출발을 프랑스 북서부 산촌 생장에서 한다고해서 프랑스길로 간주하는 산티아고 가는 순례길도 포함됩니다. 유럽의 가장 위대한 도보길 중 하나인 GR20는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에 있으며 섬을 종단하는 산맥이 등뼈처럼 이어져있는데 바다에서 솟아오른 2,700미터 높이의 몬테 신토를 포함하여 가장 장대한 고산 암봉들이 수없이 나타납니다.  코르시카 섬(la Corse)은 광활한 대지,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산, 가파른 절벽과 감춰진 계곡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해안이 절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뛰어난 자연경관과 더불어 목축업이 발달하였고 오래된 역사 살아있는 전통과 문화를 제공하는 코르시카는 전세계 관광객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는 여행지로 또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의 고향이자 유배지로도 유명합니다. 오래 전부터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 등 다양한 세력의 지배를 받아온 지리적으로도 프랑스 보다 이탈리아와 더 가까운 코르시카는 4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이탈리아 제노바 공국에 흡수되었다가 18세기 중반에 프랑스에 매각되었습니다. 그후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뚜렷한 문화적 특성과 고유의 언어 그리고 오랜 전통을 지켜온 코르시카인들은 항상 섬의 독립을 꿈꿔왔습니다. 1970년대부터 높은 실업률과 경제난, 프랑스 정부의 무능함에 불만을 가진 코르시카인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워 프랑스를 상대로 무장 독립 투쟁과 테러를 벌이기도 하였는데 검은 피부에 머리띠를 질끈 묶고 있는 그 상징적인 그림이 심볼이 되면서 섬의 지도와 함께 코르시카를 대표하는 홍보물로 전시되고있습니다. 1980년대 프랑스 지방분권화가 이루어짐과 더불어 섬은 프랑스 헌법재판소로부터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받게 됨으로써 평화와 안정을 꾀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제 트레일 길위에서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아 평화롭기만 하며 길 위의 현지인들은 트레커들에게 정말 산만큼이나 너그럽습니다. 코르시카의 관문 도시인 Calvi의 바스티아공항에 내리면 보잘 것 없는 규모와 시설에 적잖은 실망을 하게 되지만 활주로 너머로 펼쳐지는 거대한 산군에 제압당하고 맙니다. 대단한 산의 규모를 찬탄하며 감탄사로 호들갑을 떨면서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며 자아도취에들 빠집니다. 가을산이라 더욱 허전한데 아래에만 푸르스럼한 상록수들이 깔려있고 위세당당하게 높아진 바위산들이 멋들어져 보입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해안선을 따라 걷습니다. 온통 바위섬이라 백사장을 보기는 어렵고 길도 모두 절벽길입니다. 더구나 어디서 모였다가 불어오는지 바닷바람이 드세서 뭐든 다 날라 갈 판입니다. 지중해 고유의 건축색인 미색으로 치장한 칼비 마을이 잔명을 받아 빛을 발하는데 그 뒤를 받쳐주는 암산들이 있어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냅니다. 짧은 가을날의 햇살이 저물어가고 두텁게 서녘 하늘의 구름부터 불태우며 화려하게 지는 낙조는 나그네의 심금을 울리는데 집 떠나온지 한달이 넘으니 괜한 향수에 젖어 센티멘탈해지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