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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의 싱그러운 아침기류를 마음껏 마시면서 길을 나서는데 마을의 소들이 모두 나왔는지 길을 가득 차지하고 있습니다. 별 먹거리도 충분하지 못한 바위산 비탈에서 못먹어서 그런지 가축들이 다들 날씬합니다. 코르시카 섬에서는 모든 가축들을 방목해서 키웁니다. 소들 뿐만 아니라 닭은 물론이고 뿔이 묘하게 생긴 산양의 일종인 무플론(Mouflons)들도 계곡을 채우고 있고 심지어 돼지까지도 그렇게 키웁니다. 말못하는 짐승들에게도 자유를 주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지위를 주려함은 정신적인 선진국의 표시같아 보입니다. 섬이라는 지리적인 한계로 가봐야 섬안이라는 점도 고려했을까? 공존의 모습이 참 따뜻하게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오늘은 GR20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전설적인 Monte Cinto구간을 걷는데 Monte Cintu산과 Pointe des Éboulis를 통해 Great Barrier Reef를 건너야합니다. 코르시카의 이 꿈의 환경에서 지난한 오름길을 올라 신토를 곁에 두고 고개를 넘어가는 여정입니다. 초반에는 가장 희귀하고 가장 장대한 코르시카 전나무의 그늘아래를 걸어서 넓은 계곡으로 접어드니 치고 올라가야할 길이 아득하게 이어져있고 멋지게 자란 소나무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데 얼마나 오랜 풍상을 견디며 살아왔는지 정일품에서 종삼품까지 여기에 다 모아둔듯합니다. 아직은 노란 단풍으로 물든 오솔길을 따라 경쾌하게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오늘 정점을 향해 전진합니다. 키작은 관목들과 큰바위 사이를 비집고 한참을 오르면 시원스레 낙하하는 폭포와 그 물이 고여 만들어진 큰 용소를 넘는 아치형 돌다리를 건넙니다. 시린 물에 얼굴을 파묻고 벌컥벌컥 들이키니 코르시카를 통채 마시는 것 같습니다. 인생샷 한장씩 건지고 다시 오르는데 이제부터는 암벽등반 수준의 바위타기가 시작됩니다. 아주 위험한 구간에는 스텝이나 체인줄이 설치되어 있어도 아찔한데 이 마저도 없는 대부분의 구간에서는 긴장감에 쩔게 합니다. 절벽 곳곳에는 우리네 낙낙장송처럼 휘휘 늘어져 있고 그 뒤를 거대한 바위산이 받쳐주고 있으니 대단한 풍치를 만들어냅니다. 청자색 깊은 가을 하늘에는 구름 한점이 없고 그 하늘 가장자리에는 최고봉의 정상이 오르는 만큼 조금씩 채워져옵니다. 오를수록 낮아지는 건너편 산에는 작은 폭포들이 이미 얼어붙어 하얗게 보이는데 이곳은 어느새 겨울로 변해버렸습니다. 손에 땀이 베이도록 그렇게 한참을 올라 바위구간이 끝나니 이제는 자갈길이 시작됩니다. 수북하게 쌓인 자갈들로 덮힌 매우 경사진 길이라 쭉쭉 미끄러지기 십상입니다. 바람이 매서워지고 낙잡 엎드린 덩쿨 소나무들이 띄엄띄엄 군락을 이룬채 서로 엉켜 의지하며 살아들 갑니다. 구름띠가 발아래 양탄자처럼 깔리니 더욱 신비로운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마침내 고갯마루에 올라서고 신토산과 눈맞춤을 하니 Renosu Massifs가 펼쳐놓는 기가 막힌 완벽한 경치를 보게됩니다. 몸을 돌려 사방팔방으로 바라보면 천상극치의 전망이 가득 눈에 차고 오늘은 운수대통하여 멀리 리구리아(Ligurian)해와 이탈리아의 엘바(Elba)섬이 수려하게 펼쳐집니다. 언제까지나 머물수는 없으니 올라온만큼의 하산길로 들어섭니다. 지겨울만큼의 하산길을 하염없이 걸어 Tighjettu산장을 통과하면서 차분한 휴식을 취하고 굴곡많은 인생살이처럼 다시 오르고 내림이 반복되는 종주길로 들어섭니다. 주변산의 경치를 보며 보카 디 푸셜(Bocca di Fuciale)을 오르기 전에 거대한 라리시오(Laricio) 소나무숲을 부드럽게 걷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Ciuttulu di i Mori셸터를 향한 안부를 걸어 올라가면 Golo계곡 아래로 빼어난 전망이 펼쳐집니다. 길게 뻗은 계곡은 골로강의 많은 바위용소들을 품고서 짙어가는 단풍들이 서녘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소리만큼이나 정갈한 시내는 이 청정계곡의 젖줄로 이렇게 풍요로운 수목들이 번창하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거의 평지길을 따라 냇물과 어깨동무하고 나폴나폴 내려가니 골마다 흘러내려 만난 물이 강을 이루고 낙차 큰 폭포를 탄생시켰는데 그 상부에 다리가 걸쳐져 있습니다. 그 주변으로 물웅덩이들이 여럿 만들어져 있고 큰 용소는 중형 풀장같이 넓은데 주변으로 많은 산객들이 방문하여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단체 방문도 확인되는데 견학(Field Trip)들을 나온것 같습니다. 길을 꺾어 바위산을 내려가는데 환상의 뷰가 확보되는 절벽에 오래된 돌집과 허물어진 담장들이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습니다. 목동들의 여름 거처지 입니다. 풀이 많은 여름시즌에 이 골로 계곡에다 소들을 방목해 키우며 관리하는 시설인데 이렇게 명당자리에 서있으니 오랜 세월이 지나 부서지고 허물어져버려도 그 멋이 더욱 돗보입니다. 늙어가도 더 중후한 노년의 멋을 풍기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저녁 햇살이 선명한 단풍을 투과하니 길은 노랗게 채색이 된채 어두운 숲길을 비춰줍니다. 제법 오르막길을 다시 차올리면 이 숲길이 끝나면서 포장도로변에 지어진 호텔 Castel del Vergio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눈앞에 나타납니다. 이 GR20 길 위에서 어쩌다 만나는 호텔급 숙소중 하나입니다. 이 종주길은 구간을 잘 나누어 걷는다면 산장이나 셸터 심지어는 이 베르지오 같은 호텔에서 잘수있는 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또 마을로 들어서는 날이면 기트(Gite)라는 숙소를 홍보하는 표지판을 많이 볼수 있는데 이런 프랑스 민박집에서 하루 묵어볼만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에서는 도시로 향한 이농 현상으로 피폐해진 농촌을 살리기 위해 집들을 숙박업으로 개방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그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경험해보고 농부의 아내가 정성스레 만들어 내놓는 프랑스 전통의 가정식 식사를 즐길수 있어 좋습니다. 이런 소담스런 형태의 정감어린 숙소가 오늘날에는 에어 비 앤드 비(Air B&B)라는 엄청난 대규모의 상업적 임대 사업이 생겨나 지금은 공룡처럼 커져서 비열한 방법으로 가격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어 일년을 쉼없이 유랑하는 나로서는 매우 씁쓸한 숙박업의 진화입니다. 호텔 영역을 벗어나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구간을 반복하며 코르시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호수 Lac de Nino로 인도합니다. 일부 트레커에게는 오늘 여정이 매우 긴 하루일지도 모르지만 경치가 그 수고를 보상해줄 것입니다. 이 멋진 노란색 숲그늘 속을 거걷다보면 길은 점차 올라가고 숲은 듬성듬성해지다가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아침나절의 이 등반에 대한 노고는 이내 보상받게 되는데 영원히 추억으로 남을 G20 종주트레킹을 기념하기에는 이 기막힌 풍경보다 더 환상적인 장소는 없습니다. 이어 나타나는 작은 연못 Pozzines과 함께 호수 Nino의 빼어난 풍경이 더해줍니다. 산의 환상적인 전망과 호수주변의 평온한 목초지에 제멋대로 풀어놓은 말, 소 및 돼지들이 평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이 길은 강을 따라 이 코르시카 섬 종주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안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