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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연한 일출을 감상하고 아침을 부지런히 열고 길을 떠나면 아랫마을 Cozzano의 교회당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니 마음의 성호를 긋고 게으른 소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구름바다 위의 아름다운 능선을 따라 트레킹을 이어갑니다. 오늘도 또 하루 도전의 일정. Tavignano협곡을 경유하여 지난한 오르막길을 꾸준하게 땀을 흘리며 올라가 고산지대를 걸어 Pietra Piana산장으로 향하는데 여전히 화려한 화강암산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잠시 산정에서 쉬어갑니다. 멀리 놀라운 360도 파노라마 풍경으로 보답하는 이곳에는 방목된 우스꽝스런 야생돼지가 우리를 반겨주고 이제 너도 밤나무로 그늘진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철지나 마른 꽃이 가득한 계곡에는 정갈한 시냇물이 흐르는데 잠시 발을 담구고 휴식을 갖습니다. 이 구간은 타비냐노강의 수정처럼 맑고 정갈한 물로 목욕하기에 아주 제격입니다만 10월의 마지막날인 오늘 기온으로 봐서는 엄두도 못낼일입니다. 무더운 여름날을 상상하며 마음으로만 수영을 하고 상상만으로 뽀송뽀송해진 모습으로 바람과 함께 날아가면 이후로는 이제 덜 거칠고 더욱 평화스러워진 풍경이 다가옵니다. 숙소에 들어 조금은 여유있는 저녁황혼을 바라보며 한잔의 와인을 감쌉니다. 북부 산군의 종주를 마감하고 트레일을 벗어날 Vizzavona 마을로 길을 잡습니다. 그 길에는 깊은 산곡에 은둔해있는 주옥같은 호수의 절경을 찾아내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메루 호수(Lac de Melu)와 그 위에 있는 카피텔루 호수(Capitellu)라는 보석이 그것입니다. 이젠 귀가 시리고 손을 호호 하얀 입김으로 불어 녹이며 가야하는 겨울 같은 아침입니다. 주말 탓인지 이른 아침에도 이미 길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뿌려놓았습니다. 넘친 호수물은 일단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그 물은 시내를 이루어 넓은 암반위로 시내가 되어 흐르더니 들어서는 계곡의 초입에는 넓은 강이 되어 지중해 바다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침해가 고산위로 얼굴을 내미니 그 투명한 햇살에 이제야 코르시카의 산들이 단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켭니다. 계곡을 따라 돌길을 차고 오르는데 한숨 돌리고 가고 싶은 지점에 여름 목동들의 거주지인 돌집들이 지어져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올라온 주인 내외가 탁자에 내려놓는 것은 먹거리들을 장을 봐서 온것들인데 몇가지 메뉴가 게시판에 써져있는 것을 보니 이 돌집을 카페처럼 운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커피 한모금으로 몸을 녹이고 제법 가파른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데 단풍이 화려하게 물든 드넓게 펼쳐진 장대한 계곡 중심에 한줄기 시원한 폭포가 내리고 있습니다. 철계단까지 설치된 험한 바위길을 올라서니 가을색을 먹은 메루 호수가 넓게 누워있습니다. 하늘 모퉁이에 걸려있는 낮달과 암봉들도 함께 잠겨있는 호수는 한결 물결도 없이 고요한데 이미 좋은 자리를 선점한 크고 작은 무리들이 피크닉을 즐기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소풍나온 이들은 이곳에서 일차로 걸러지고 종주자들이나 아니더라도 체력이든 모험심이든 더 나은 이들은 온통 바위뿐인 급경사길을 치고 올라 카피텔루 호수까지 갑니다. 길의 표식은 분명히 있어도 제멋대로 맞는 길을 택해 걷다보니 비탈 전체가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표식을 놓치지않으려고 애써며 한발한발 오릅니다. 결국 마지막 부분에 걸어둔 쇠줄구간을 한참 타고 오르니 마침내 장엄한 호수와 거산이 나타납니다. 아직 다는 걷히지 않은 물안개가 풍경을 더 신비롭게 하는데 호수 전체가 발아래 모두 들어오는 정점에다 세상 가장 비싼 가든 식당을 차리고 황제의 정찬을 즐깁니다. 지중해표 감을 포함한 과일과 크로아상. 바게트에 소대가리표 치즈. 더불어 맥주 한잔에 신선이 되어봅니다. 차츰 안개는 걷히고 거침없는 진풍경이 다시 2막으로 펼쳐지니 연두빛을 품은 호수는 바람 한점 스밀 곳이 없어 거울처럼 맑고 고운 물빛에 투영된 날카로운 바위산이 쌍둥이로 변신해서 비치고 그 호수 위를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들이 짝을 지어 비행을 합니다. 선경이 따로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장대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절정에 이른 가을 산하는 황금빛으로 익어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세월동안 세상 가장 아름답다는 100대 트레킹을 해오면서 종주길이란 것이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풍경이 수려하고 감동적인 것만은 아님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주창하는 이들의 잘못된 주관적 평가나 아니면 국수주의 입각한 사기성이 스민 과장형 평가로 막상 현지에서 그 길들을 걸어보고 갖는 실망감은 정말 컸었고 자괴감으로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그길을 100대 리스트에서 빼고 다음 순위에 있는 길을 채우는 작업을 하다보니 완주라는 대망의 달성이 늦어지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오늘 걷고있는 코르시카 GR20도 참으로 실망하게 만들어 그래서 막상 때로는 평범하고 일반적이고 전형적이거나 때로는 실망스럽기까지 한 구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슴 떨리고 나를 흥분케하는 찰나의 풍경을 만나게 되면 그 실망의 심연에서 빠져나와 행복감과 희열로 넘치면서 맞갚음이 되곤합니다. 이제부터는 이제 한없는 하산길. 북부 산군의 종주를 마감하는 Vizzavona로 꾸준한 내리막길로 천이백미터의 고도를 내려야 합니다. 분별없이 타오르는 가을 단풍속으로 들어가 그 색에 물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가는데 발길이 더뎌집니다. 우산처럼 터널처럼 덮고있는 단풍이 너무 매혹적이라 사진으로 남기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즈음에 큰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한눈에 봐도 종주하는 트레커입니다. 그녀는 통상적인 루트를 반대로 진행하는데 오늘이 7일째라 하니 그 먼길을 참 열심히 걸어온것입니다. 솔로 여성 하이커의 위대한 여정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안전을 기원해줍니다. 그녀의 맑은 웃음을 뒤로하고 그 서정넘치는 돌길을 따라 이제 공원 경내로 들어갑니다. 계곡따라 거대한 암반들이 계단처럼 층을 이루고 그 틈사이로 유장하게 물이 흐르니 가족들의 소풍장소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 인파들로 계곡은 꽉차있고 생동강이 넘칩니다. 물이 잠시 머물다가는 용소마다 젊은이들이 옷들을 훌렁 벗고서 그 찬물에 뛰어듭니다. 아마도 젊은 객기를 부른 것일수도 있고 너무도 해맑은 물에 몸을 담구며 영육을 세척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모양입니다. 내가 아는 무주 구천동과 도봉산 계곡을 합쳐놓은 듯한 이곳에 단풍놀이 나온 이 많은 주말 인파들이 마치 걸음의 축제를 마치고 내려오는 우리를 환영하러 나온것 같은 착각에 미소가 흐릅니다. 하산을 마감할 즈음에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줄어들고 그 위로 좁은 다리가 놓여있고 이곳이 GR20의 북남구간의 분기점이라는 대형 간판이 걸려있어 종주를 실감하는데 다함께 기념 촬영을 하며 기쁨을 나눕니다. 여정을 마치고 문명으로 돌아와 종주를 자축하는데 산그늘이 점점 작은 마을을 덮쳐오면 이 대단한 여정을 끝내면서 장엄한 산의 왕국을 떠나는 것이 차마 아쉬워집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기억들. 장대한 길이의 트레일. 웅장한 고도를 등정했던 우리들의 모습. 목동들이 만든 맛있는 치즈와 와인 한잔의 가난한 행복. 맑은 시냇물에서 발을 담그고 나누던 파안대소의 대화. 춥고 습한 밤이 지나고 맞이하던 아침 첫 햇살의 따스함. 길위에서 온정을 보여준 코르시카 사람들의 환대, 그리고 스쳐 지나갔던 모든 산객들과 그들의 따스한 표정들도… 이 모두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입니다.




